글꼴 이야기 – 돋움/바탕은 고딕/명조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원래 이 글이 글꼴 이야기의 첫 번째 꼭지가 아니었습니다. 가변 폭과 고정 폭 글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하였는데, 그 글은 Draft에서 썩고 있군요.

오늘 한 지인이 “윈도 비스타 기본 글꼴이 될 맑은 ‘고딕’은 왜 맑은 ‘돋움’이 못될까?“란 글을 알려주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필자 분께서는 일본에서 유입된 고딕체라는 이름을 돋움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는데 고딕이라는 이름을 택한 것을 아쉬워하십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에 대해 저는 다양하게 생각해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한글의 글꼴 이름은 명조체와 고딕체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부수적인 의미를 제외한 두 서체의 정의만 살펴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명조체 : 가로 그은 획이 가늘고 세로 그은 획이 굵으며, 내리 그은 획의 첫머리와 가로 그은 획의 끝머리를 세리프(serif)로 장식한 서체 (두산세계대사전)
고딕체 : 활자 서체의 한 가지로 가로획에 비해 세로획의 굵기(weight)가 굵거나 또는 가로획과 세로획이 모두 같은 굵기의 독일풍 서체 (네이버 용어사전)

이 글꼴 이름의 이면은 안상수_한재준 선생님 공저의 ‘한글 디자인’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한글꼴이 그동안 ‘명조체’로 불리어 왔다.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몇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최초의 새활자나 사진 식자가 일본을 통하여 도입된 경로를 보거나 그들의 가나 글자체가 붓글씨체이지만 한자 명조체와 함께 쓰이면서 똑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본래 명조체라는 것은 한자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글 돋움체라는 이름도 바탕체와 함께 1991년 문화체육부에서 지정한 이름이다. 본래 고딕체로 통용되어 왔는데, 이러한 유래는 로마자 알파벳의 글자체 이름에서부터 유래되어 일본에 그대로 전해진 것이 한글 명조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대로 우리에게 도입된 것이다.

기본적인 한글 자형 이름이 한자어와 영어로 되어있고 그것이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다는 것은, 큰 논란거리가 되어 왔으며, 1991년 문체부에서는 한글 글자본 제정 기준을 통해 그 대체 이름으로 바탕체와 돋움체를 제시하게 됩니다.

바탕 : 1. 물체의 뼈대나 틀을 이루는 부분, 2. 사물이나 현상의 그본을 이루는 기초.(이하 생략)
돋우다 : 1. 위로 끌어 올려 도드라지거나 높아지게 하다., 2. 밑을 괴거나 쌓아올려 도드라지거나 높아지게 하다.(이하 생략)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위에서 보는 뜻처럼 바탕체는 글을 이루는 기초적인 자형을, 돋움체는 도드라지게(강조) 보이기 위한 자형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체부에서는 고딕, 명조라는 생김새를 바탕으로 한 글꼴의 새로운 이름으로 쓰임새에 바탕을 둔 것을 제시한 것이죠. 1991년 당시에만 해도 화면출력 글꼴보다 종이출력 글꼴이 더 큰 과제였습니다. 그리고 종이 출력에는 명조체가 본문 글꼴, 고딕체가 강조 글꼴이라는 것은 주지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죠.

바탕, 돋움이라는 이름을 지었음에도 기존 이름이 계속 쓰였고, 한글 윈도우즈 9x에 포함된 이후에야 이 이름은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흘러 이제는 화면출력 글꼴도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종이출력 글꼴이 세리프 기반의 글꼴이었던 것에 반해 화면출력 글꼴은 산스세리프 계열의 글꼴이 주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바탕체와 돋움체의 의미적인 충돌에 대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화면출력 글꼴에서 바탕체는 본문 글꼴로 사용되지 않으며, 돋움체는 강조 글꼴로 사용되지 않게 된 것이지요. 과거에 ‘어째서 일본식으로 이름 지어진 글꼴을 써야하느냐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면, 이제는 ‘의미적으로 부합되지 않는 글꼴을 써야하느냐의 논쟁’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가 새로운 이름을 지을 때 선택을 잘못하여 생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꼴의 이름은 여러 가지로 지을 수 있습니다. 글꼴의 모양을 보고 지을 수 있고 글꼴을 디자인한 사람의 이름을 달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혀 의미가 없는 고유명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양, 디자인한 사람, 고유명사 모두 바뀔 일이 드문 것이고, 그렇기에 나중에 그 이름이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다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글꼴이 가진 의미’를 가지고 이름을 짓는다면 어떠할까요? 화면과 종이출력 글꼴이 분화되어 버린 것처럼, 화면출력 글꼴에서의 본문 글꼴은 더 이상 명조체가 아닌 것처럼, 의미는 자형 그 자체보다 떠 빨리 바뀝니다.

이러한 의미의 변화를 무시하고 그대로 쓰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당장 맑은 고딕을 맑은 돋움으로 바꾼다면, 어떤 글꼴이라고 봐야할까요? 이 글꼴은 Windows Vista에서 기본 한글 글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맑은 돋움이라면 Vista는 기본 글꼴로 강조체(도드라지게 하는)를 쓰고 있다는 말이 되어버리는 꼴이지요.

게다가 고딕체가 강조(돋움)체로서 의미가 강한지도 연구해 봐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고딕체는 각주나 미주, 제목, 목차를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될 때도 많이 있고, 볼드형 자형이 아닌 이상 명조에 비교할 때 돋우아준다라는 성질을 찾을 수는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렇게 문제제기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고, 바탕체와 돋움체를 대체할 수 있는 좋은 이름을 제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제기는 문제제기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글을 올려봅니다. 저는 대체할 이름을 생각해 볼 생각입니다. 같이 새로운 이름을 찾아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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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글 잘 읽었습니다. 트랙백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몰라서 게시물 주소만 남겨드립니다.
    http://borebore.net/489
    행복한 하루 되세요^^

  2. 잘 읽었습니다!
    저도 대체할 이름을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빠른 시일내에 영향력 있는 분들이 정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트랙백 보낼 방법을 몰라서 링크를 남깁니다.
    http://blog.tinywolf.com/182

    • 흥기사 on 2014년 5월 15일 at 11:36 오전
    • Reply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대체는 되지 않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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